티스토리 뷰

반응형

영화 <바비(Barbie)>

예고편부터 화제를 모았던 그레타 거윅 감독의 바비가 개봉했습니다. 주연 배우 마고 로비는 인터뷰에서 '완벽히 페미니즘 dna에 기반한 환상적인 휴머니스트 영화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자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시작된 바비라는 인형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 인권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제를 확장해서 인권 그 자체까지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표현할 단어가 존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성과 남성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레타 거윅의 여성주의 영화는 어떤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을까? 이 영화가 바비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마텔 사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개인적인 해석을 해보려 합니다. 

 

영화 <바비>의 줄거리 및 시대의 변화

영화의 오프닝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오마주하며 바비의 등장을 보여줍니다. 여자 아이들에게 주어진 장난감이 아기 인형 정도밖에 없던 시대 아이들에게 주어진 롤 모델은 엄마뿐이었던 그때, 바비는 독립적인 여성의 롤 모델을 만들어 줍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바비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 일어난 시대와 생각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바비랜드의 바비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바꿨다는 자부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로 넘어온 바비가 글로리아의 딸 사샤를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에 대한 현재의 평가를 마주합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완벽함에 대한 콤플렉스를 안겨주는 시대착오적인 물건이라며 친구들과 둘러앉은 사샤가 비난을 쏟아냅니다. 감독은 바비를 나쁘게 표현하고 싶은 걸까요? 그렇다면 마텔사에서 영화를 허락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바비는 곧 생각이라고 이해했습니다. 특히나 주인공인 마고로비가 연기한 전형적인 바비는 과거에 만들어진 과거의 생각입니다. 첫 등장에서는 세상을 바꿨지만 이제는 낡은 생각이 되어버린 전형적인 바비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에 남아 있는 구세대의 페미니즘을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이 전형적인 바비가 예쁘고 완벽하고, 금발이어서 문제일까요? 중요한 것은 변화라고 느꼈습니다. 시대는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생각도 따라서 변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엔딩에 바비를 만난 창조주 루스 앤들러가 생각은 영원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비는 영원을 포기하고 인간이 되기로 결정합니다. 과거의 낡은 생각으로 표현되었던 바비가 고정된 생각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로 결정하는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감독은 어떤 사람들의 어떤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기를 바라고 있을까? 마고 바비에게 영향을 준 현실 세계의 주인공 그레이스는 후반부에 영화의 핵심이 되는 아주 긴 대사를 합니다. 여성의 삶이 어려운 이유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시선이 담긴 성토였습니다. 누구나 멋지고 잘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바비 인형은 소녀들에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리더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외향적이지 않고, 조용하고, 소박한 취향의 사람도 있기에,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때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혀만 준다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닙니다. 여성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바비라는 개념은 반대로 대단한 걸 이뤄내지 못하는 바비는 쓸모없고 부끄러운 바비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임산부 바비 밋지는 이런 부분을 꼬집는 제품입니다. 여성이 될 수 있는 수많은 모습 중 당당하고 위대한 모습인 어머니가 과거에 강요되던 형태라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숨겨진 현실을 풍자합니다.

 

인간 존중에 대한 이야기


바비랜드 속 바비와 켄들은 이런 것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이상에 젖은 가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마고 바비가 갑자기 죽음을 언급하며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죠.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한 바비는 발 뒤꿈치가 바닥에 닿는 평평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몸을 고치기 위해 이상한 바비를 찾아가자, 하이힐과 버켄스탁 둘 중 하나를 고르게 됩니다. 바비는 하이힐을 고르지만 이상한 바비는 안 된다고 합니다. 선택할 수 있다는 자기 통제감을 주려 했을 뿐 버켄스탁, 즉 현실을 고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현실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바비를 따라 현실 세계로 넘어간 켄을 통해서 이를 보여줍니다. 켄은 바비의 남친입니다. 바비를 돋보이게 해 주기 위해 출시된 부속품이나 장식품 같은 존재입니다. 켄은 해상 구조 요원이나 서퍼가 아닌 그냥 해변에 존재하는 요소입니다. 금발 머리에 잘생긴 얼굴 조각 같은 몸매로 보기에 좋은 존재인데요. 성별의 권력이 현실과 정반대인 바비랜드에서 켄은 과거의 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현실에 도착해 남성 위주의 사회를 보고는 가부장제라는 제도의 매력에 빠져 수술을 집도하고 경영자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mba, 의사면허처럼 자격이 필요하자 그냥 바비랜드로 돌아가 가부장제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켄은 바비랜드에서 아무런 능력도 없이 새로운 개념을 가져온 것만으로 권력을 차지합니다. 대통령, 대법관, 의사 등 모두 여성이던 바비랜드가 얼마나 허술한 기반 위에 존재했는지 보여주는 황당한 장면입니다. 앞서 이곳을 떠나기 전 마고바비는 이상한 바비와 남자친구 켄에 대해서 잠시 대화합니다. 잘생긴 외모를 말하며 그를 성적 대상화합니다. 이때는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잠시 후 현실 세계로 넘어온 바비는 그곳에서 자신이 성적 대상화되는 경험을 하며 불편한 감정을 느낍니다. 뒤이어 만나는 사샤에게서는 파시스트라는 말까지 듣게 되면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낍니다. 바비랜드는 생각의 세상입니다. 액체나 거울처럼 복잡한 물리 법칙이 필요한 요소는 없습니다. 마트 회사가 과거에 만들었던 바비라는 낡은 아이디어로 돌아가는 곳입니다. 이 오래된 생각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현실 세계에 온 켄은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이유를 가부장제에서 찾습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바비와 켄의 성별 권력 다툼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결국 영화의 엔딩에 이르면 이 권력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말합니다. 켄이 자신이 존중받았다며 꺼내는 일화는 어떤 여자가 시간을 물어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를 치켜세워주거나 그에게 복종한 일화가 아닙니다. 존중이라는 것이 권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앞서 현실 세계를 구경하던 캔이 어떤 남자에게 가부장질을 하고 있냐고 묻자, 그는 아닌 척하지만 그러고 있다고 합니다. 현실 세계의 권력은 아직도 많은 부분을 남성들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도 페미니즘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ceo, 정치 지도자 또는 고학력 전문직 직종에서 많은 여성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케이 만나는 의사도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의사는 자신을 의사로 보지 않는 시선에 진절머린 하지만 익숙한 태도였습니다.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익숙해 보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을 성별에 따라 정확히 반으로 나누는 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평등일까? 적어도 이 영화가 말하는 여성주의가 생각해야 하는 지점은 모든 여성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것이라 느꼈습니다. 바비랜드는 켄들에게 점령당하고 이름도 켄 더머로 바뀝니다. 하지만 돌아온 마고 바비와 그레이스, 사샤, 이상한 바비가 함께 계획을 세워서 권력을 탈환합니다. 켄들은 속임수에 빠져 분열하고 어이없이 권력을 빼앗깁니다. 이 바비랜드의 상황은 현실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두 성별이 권력을 두고 싸우는 것은 엎치고 뒤집는 쟁탈의 반복일 뿐입니다. 여성들이 켄들처럼 세상을 지배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남성들이 바비처럼 빼앗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권력 다툼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것입니다. 바비와 켄의 관계는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장식품으로 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면 앨런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앨런은 켄의 친구입니다. 켄을 돋보이게 하려고 출시된 캔의 장식 같은 제품이죠. 켄에게 입히지 않는 옷을 입히도록 옷 역시 켄의 사이즈와 같습니다. 이렇게 나를 돋보이게 하려고 누군가를 바닥에 깔게 된다면 계속해서 수많은 앨런이 생겨나고 이는 결국 계급이 됩니다. 바비는 성별이 이런 계급의 역할을 벗어나기 위해 나 자신을 나로서 긍정하는 자세를 제시합니다. 바비의 켄도 아니고 켄의 앨런도 아닙니다. 바비랜드에 없던 거울을 보고 스스로의 삶과 가치를 인정하면 자신을 존중할 수 있게 되고, 그래야 남을 존중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대단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가 대단해질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내가 누구든 존중받을 자격이 있고, 여러분이 누구든 존중해야 합니다. 이 영화의 쟁점은 페미니즘이 아닌 그냥 인간 자체의 존중,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