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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토라는 남자>

오늘 리뷰할 영화는 배우 톰행크스의 오토라는 남자입니다. 
오토라는 남자는 스웨덴의 칼럼니스트인 프레드리크 배크만의 장편 데뷔작인 2012년도에 출시된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원작으로 각색된 영화입니다. 원작인 오베라는 남자의 영화와 소설의 배경이 스웨덴이지만, 이번 작품의 배경이 미국으로 바뀌면서 달라진 설정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이웃이 이란 사람에서 라틴계 이민자인 멕시칸이라는 점 또한 소설에서 오베는 아버지와의 유대감을 나타내는 사브라는 브랜드의 차종을 운전하지만 이 작품 속 오토는 쉐보레의 차종을 이용한다는 점 등 몇몇 다른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오토라는 남자>의 줄거리

이른 아침 항상 정시에 잠에서 깨는 오토는 비어 있는 자신의 옆자리를 잠시 쳐다본 후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정장을 입습니다. 그는 두 개의 찻잔이 놓여 있는 선반에서 하나를 꺼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집 밖을 나섭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짜증이 나 있고 까칠한 상태인 그는 본인이 사는 주변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그의 첫 아침 일과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분리수거는 제대로 되어 있는지, 주차 허가증은 있으며, 주차는 제대로 되어 있는지, 마을의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순찰을 합니다. 사실 그가 이렇게 까칠하고 화가 나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아내를 잃은 상실감 때문이었습니다. 흑백이었던 그의 조그마한 세상에서 그의 전부이자 단 하나의 컬러였던 아내를 암으로 떠나보내고,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는 슬픔과 그리움 속에 파묻혀 그녀를 따라가고자 스스로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날, 시끄러운 이웃 마리솔과 그녀의 가족이 앞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고, 그가 생을 마감하려고 할 때마다 불청객의 방문이 그를 방해하게 됩니다. 주변을 정리하고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려는 오토, 슬픔에 가득 차 이 세상 모든 것에 화나 있는 그는 자신을 용서하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배우 톰행크스가 전하는 삶이라는 이름의 따뜻한 힐링 영화, 오토라는 남자입니다.

 

배경

이 작품은 작년 12월에 개봉해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약 5천만 달러의 예산으로 약 1억 달러의 이상을 벌어들인,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올해 2023년 4월 기준 아이엠 db에서 10점 중 7점, 4점을 받으며 관객들에게도 꾸준히 호평을 받은 영화입니다. 대부분 영화 속에서 오토라는 역을 연기한 톰행크스가 가장 잘하는 역할로 돌아와 마치 그의 전문 분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는 평가와 더불어, 이 영화 속 차갑고 까칠한 오토가 새로운 의미의 가족을 만나며 변화해 가는 과정을 통해 감동을 주는 영화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원작의 팬들에게는 영화 오토라는 남자가 원작인 소설의 깊이에는 못 미친다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저는 원작 팬분들의 의견에 상당 부분 동의하는 편이지만, 이번 작품과 같이 원작과는 다른 새로운 설정으로 인해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작품을 개별적으로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개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이 작품 오토라는 남자의 각색은 원작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닌, 감독의 용기 있는 결정으로 원작과는 결을 달리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톰행크스가 연기하는 오토라는 인물의 변화를 통해 만들어내는 잔잔한 감동과, 상실감을 딛고 일어난 그를 통해 치유되는 느낌은 이 작품을 사랑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어느덧 60대 중반에 접어든 대배우 톰행크스는 1980년대 공포 영화에서 단역으로 데뷔해 첫 주연작인 스플래시를 통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90년대에 접어들어 93년 필라델피아, 94년 포레스트 검프, 그리고 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에 출연해 그의 뛰어난 재능과 연기력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아온 배우입니다. 이 영화 속 톰행크스는 우뚝 솟아나 혼자 돋보이는 큰 산 같은 존재가 아닌, 자연 속 산책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산책로를 거니는 관객에게 하여금 이 영화가 시작하고, 오토의 심술궂음을 이해하지 못하던 관객들조차 약 2시간이라는 러닝 타임 동안 그와 함께하는 이 산책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편안함을 관객들에게 선사합니다.

 

살고 싶었던 남자, 오토

또한 이번 작품 속 오토 하는 감정의 양 극단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캐릭터인 마리솔은, 이 작품 속 삶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로서 오토가 변화해 가는 순간마다 때로는 끌어주고, 때로는 곁에서 함께 있어주는 이 작품 속 오토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이 배역을 연기한 마리아나 트레비노는, '나도 주변 사람 중에 저런 사람이 있으면 참 행복할 텐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만큼 매력적으로 이 역할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속 톰행크스의 연기는 두 말의 입 아플 만큼 훌륭했지만, 그런 배우의 옆에서 본인의 진가를 발휘하는 마리아나 트레비노 또한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좋은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오토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말투나 행동과는 반대로, 실제로 선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 속 오토는 아내의 뒤를 따라가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방해하는 이의 등장으로 하여금 실패하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이를 어떤 이들은 죽음과 삶을 관장하는 신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면, 오토의 죽음을 막기 위해 그의 인생에 등장시킨 시끄러운 이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영화 초반부, 그가 끈을 거실에 매달고 테이블에 올라가 삶을 마감하려는 순간, 오토의 앞집에 이사 온 마리솔 부부가 주차에 미숙하여 결국 테이블에서 내려와 그가 대신 주차해 주는 모습을 보면 오토라는 사람은 과연 죽고 싶은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차오에서 삶을 마감하려고 할 때에도, 철로에서 뛰어내리려 할 때에도, 심지어 총을 꺼내 자신의 머리를 겨눌 때에도 방해하는 이는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선택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닌, 매번 타인을 도울 선택을 하는 건 오토 자신입니다. 저는 오토의 삶을 마감하려는 행위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인 소냐와의 일방적인 약속을 이행하려는 일종의 강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다정하고 선한 사람이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것이 아닌, 그들을 도움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을 돕는 모습을 영화 안에서 보여줍니다. 결국 오토라는 사람은 죽고 싶은 사람보다는 오히려 살아갈 이유 찾아 살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 속 제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 초반부 마리솔이 오토가 닫으려는 문 사이에 발을 집어넣어 닫지 못하게 하는 장면입니다. 이 작품 속 주변인의 도움이 절실해 보이는 오토는 아내의 죽음 이후, 마치 멈춰진 시간에 사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을 밀어내고 홀로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운 마음의 울타리를 넘어 들어온 마리솔이라는 존재는 영화 속에서 문 사이에 본인의 발을 넣어 그 문을 닫지 못하게 하는, 쉽게 말해 강제적으로 그의 영역을 침범한 오토의 입장에서 마음의 침입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슬픔에 빠진 사람을 깨우는 것은 다른 이의 묵묵한 기다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적극적으로 그의 곁에서 삶의 온기를 퍼뜨려주는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기억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장면 속 마리솔의 행동이 '당신은 충분히 아내를 애도했으니 살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하나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보여 제게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오토는 지병으로 아내의 곁으로 가게 됩니다. 그는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리솔이라는 운명이 만들어준 하나의 가족을 다시 만나 삶을 낭비하지 않고 충분히 즐기고 홀가분하게 아내 소냐의 곁으로 가게 됩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이 그의 장례식이라는 점은 죽음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에 저에게는 오토와 아내인 소냐를 영화 속에서 축복하는 해피엔딩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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